책의 제목에 대하여
책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내용도 좋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는데, 책의 제목입니다. 영문판 제목은 ‘The Creative Curve’인 것으로 보이는데, 어찌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으로 번역되었는지 의문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브, 즉 창의력 곡선은 책의 내용에서 가장 가치있고 중요한 내용이였습니다. 그런데 한글 제목은 참… 세속적이고 싼티나는 제목이 붙었습니다. 물론 뇌과학과 심리학에 대한 내용을 다루므로 ‘생각’은 그럴 듯 합니다. 또 마케팅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므로 ‘돈이 되는 순간’도 터무니 없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돈 버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삼류 자기계발 서적은 아닙니다. 제목에 비해 아주 좋은 책이였습니다.
창의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책에서 다루는 중심 주제는 창의력입니다. 번뜩이는 창의력은 모차르트나 스티브 잡스같은 천재들의 전유물인가?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창의력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이야기들을 다룹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주제에 대해 깊게 고민해본 적이 없을 겁니다. 그래서 창의력과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을 확률이 높죠.
책의 앞부분에서는 이러한 오해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멋진 아이디어를 위해서는 천재일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에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아이디어만이 창의적인 것은 아닙니다. 올바른 방법으로 시간을 투자한다면, 그리고 창의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 있다면 누구나 모차르트 같은 예술가나 스티브 잡스같은 기업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솔깃한 주장들에 대해서 실제 사례와 연구들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멘탈 모델
뛰어난 예술가, 운동 선수, 기업가, 마케터 등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만 시간의 법칙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분야에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크게 오해받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1만 시간을 투자한다고 해서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책에서는 멘탈 모델과 목적이 있는 연습을 강조합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수준의 기술을 익히고 나면, 더 이상 의식적으로 기술을 향상시키려고 애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단거리 육상선수와 그저 잘하는 축에 속하는 선수를 비교했을 때, 둘 사이에는 신체적 차이 뿐 아니라 정신적 차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최고 수준의 단거리 육상선수들은 일반적인 주자들보다 자신의 내면 상태를 더 철저히 점검하고, 경기 중에도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보다 집중적으로 궁리했다고 합니다. 이런 정신 자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체스선수나, 의학 전문가, 컴퓨터 프로그래머, 프로게이머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런 정신 자세를 멘탈 모델이라고 부르는데,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던 메타인지와 관련이 깊어 보입니다.
우리는 흔히 한 분야에 뛰어난 사람을 볼 때, 재능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곤 합니다. 저 사람은 날 때부터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천재다. 선천적인 것이기 때문에, 후천적으로 따라잡을 수는 없다. 유전자의 차이다. 물론 근력, 키, 공간지각력, 순발력 등 선천적으로 특정 분야에 유리한 조건을 타고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멘탈 모델과 목적이 있는 연습입니다.
천재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이른 나이에 멘탈 모델이 형성되고, 꾸준히 목적이 있는 연습을 해왔을 경우가 많습니다. 일찍이 뛰어난 선생님을 만나거나, 성공한 부모로부터 유전자가 아닌 멘탈 모델을 물려받는 것이죠.
창의적이다?
그리고 창의력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창의적이다’라는 불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해한 뒤에, 목적을 가지고 연습하면 되겠죠.
저자는 창의성에 대한 정의부터 짚고 넘어갑니다. 창의적이라는 건 뭘까요? 창의력이라는 것을 기르면 천재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을까요? 사실 창의성이라는 것은 널리 채택되거나 받아들여지는 창의적 산물을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능력과 창의적 산물은 별개구요. 아무리 기발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다고 해도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창의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죠. 특이하게 생긴 아프리카 가면을 보고 창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똑같은 가면이 몇 세기 동안 정확히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면?
그리고 저자는 “몰입”의 저자인 칙센트미하이의 설명을 인용합니다. 창의적이라는 라벨을 붙이기 위해 세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인데요. 세 가지 요소는 각각 소재, 문지기, 개인입니다.
아주 짧게 요약하면, 소재는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입니다. 클래식 음악 작곡이라면 음표 자체와 과거에 인정받은 교향곡과 작곡 형식 등이 되겠죠. 이런 소재에 대한 성격을 이해해야 중요한 요소인 친숙성의 기준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문지기란 심사위원, 음식 평론가, 투자자같은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혁신적이고 전문적이여도 이런 문지기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창의적이라는 말은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에게 “창의적이다”라는 평가를 좀처럼 주지 않기 때문에 넘어야 할 큰 산이죠.
마지막은 개인입니다. 창작가는 경제적 대가가 따르는 곳에서 활동해야하고, 시대정신에 맞는 작품을 만들어야합니다. 세련된 기술을 가지고 미디어, 소비자, 문지기의 관심을 끄는 실질적인 속성을 갖춰야 합니다. 예술가로 성공하려면 자신의 브랜드를 팔 수 있는 설득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은둔한 채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예술가의 이미지로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이야기합니다.
창의적 곡선 (The Creative Curve)
그렇다면 미디어, 소비자, 문지기의 관심을 끌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즉, 사람들이 창의적이다라고 느끼는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할까요? 저자는 여기서 창의적 곡선이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위 그래프의 가로축은 친숙성, 세로축은 선호도입니다. 창의적 곡선을 쉽게 설명하자면, “식상하지는 않으면서 그렇다고 너무 특이하지도 않은 것이 먹힌다.”입니다. 책에는 여러 연구결과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지만 생략하겠습니다.
그래프의 맨 왼쪽은 친숙하지 않은 것, 아주 특이한 것입니다. 반대로 맨 오른쪽은 유행이 지났고 너무 식상한 것이죠. 다섯 가지 영역 중 두 번째가 Sweet spot, ‘먹히는 부분’이라고 되어있습니다. 평소에 접하지 못해본 것이기 때문에 친숙하지 않지만, 또 너무 특이하지도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창의적이라고 느끼는 부분이죠. 세 번째는 Point of cliche, ‘클리셰 포인트’입니다. 사람들이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건데?”라고 느끼면서도 가장 선호하는 부분입니다. 네 번째는 follow-on failure, ‘뒤늦은 유행 따르기’입니다. 사람들이 “또 이거야?” 하면서 불쾌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부분이죠.
따라서 사람들에게 잘 팔리는, 창의적 산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두 번째 영역을 노려야겠죠. 시간이 흐를 수록 친숙성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친밀도와 선호도 각각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소재에 대한 이해와 소비자 설문 등을 통한 피드백이 필요하겠죠.
그리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내용이 상당히 길어졌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것은 책의 1부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책의 2부는 넷플릭스의 CEO 테드 타란도스, 500만 구독자를 지닌 유튜버 코너 프란타, 해리포터 작가 J. K. 롤링 등 현실에서 창의적 산물을 만들어내고 성공한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2부에서 다뤄지는 사람들에게는 저자가 강조하는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테드 타란도스는 비디오 대여점 직원, 코너 프란타는 평범한 외모의 20대 소년, J. K. 롤링은 생활 보조금을 받던 싱글맘이였죠. 이들의 어떤 점이 성공 요인이 되었는지, 또 어떤 과정을 지나왔는지 자세히 설명합니다. 또 관련된 여러 연구 등을 통해 이들처럼 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지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최근 마케팅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겨 여러 책을 찾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을 처음으로 읽게 되었는데, 흥미로운 주제 덕분에 참 재미있게 읽은 것 같습니다. 재능에 대한 이야기나 학습 방법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자기계발 서적같고, 여러 연구 결과나 사례를 들어 소비자 심리에 대해 다루는 부분은 심리학 서적같고, 유명인들의 성공 스토리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재미있는 잡지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번 읽어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책의 작명 문제에 공감합니다. 해외도 그런진 모르겠지만, 국내 출판사의 경쟁적인 판매에 심취한 나머지 정말 내용이 좋은 책들도 ‘윽..’하고 보게 되는 제목을 달고 나오는 경우가 심심찮게 보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책 제목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군요.
맞습니다. 조금 너그럽게 생각하자면, 자극적인 제목을 통해서 결국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내용이 전달된다고 볼 수도 있으려나요ㅎㅎ 그래도 원문 제목과 너무 차이가 크다 싶은 책들을 보면 항상 한숨이 나오긴 합니다.